2016년 NHK BS 프리미엄에서 방영된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わたしのウチには、なんにもない。)>는 텅 빈 방을 본 친구들이 경악하는 흥미로운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을 본 친구들은 생활감이 전혀 없는 생경한 풍경에 "막 이사 와서 짐을 꺼내지 않은 거냐"며 질문합니다. 집을 둘러본 친구들은 그녀에게 버리기 광(捨て魔)이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불편하지 않냐고 신기해하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건 물건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드라마 참고 이미지 (이미지: Manus AI) |
정리벽 드라마의 뿌리 - '단샤리(断捨離)'라는 말이 태어난 순간
이 정서에도 시작점이 있습니다. 정리 컨설턴트(クラターコンサルタント) 야마시타 히데코(やましたひでこ)가 2009년 펴낸 책「신·정리술 단샤리(新・片づけ術 断捨離)」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요가 수행 철학인 '단행(断行)·사행(捨行)·리행(離行)'에서 따온 이 단어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일본의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까지 올랐고 관련 서적은 일본 내에서만 300만 부를 넘겨 대만과 중국으로도 번역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야마시타 본인이 '단샤리안'과 '미니멀리스트'를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미니멀리스트가 소유를 '최소화'하려는 사람이라면 단샤리안은 물건과의 관계를 '최적화'하려는 사람입니다. 버리는 행위 자체보다 무엇을 남길지 판단하는 과정이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왜 정리가 '살림 팁'에서 '치유 서사'가 되었나
예전의 정리정돈 콘텐츠는 대체로 버라이어티였습니다. 연예인의 지저분한 집을 찾아가 놀라고 청소 전문가가 해결해 주는 식의 구경거리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가 그리는 정리는 다릅니다. 마이가 물건을 버리는 이유는 단순히 집이 좁아서가 아니라 대대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던 집안에서 자란 성장 배경 때문입니다. 정리는 곧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몸부림으로 그려집니다. 정리정돈이 살림의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서사가 된 셈입니다.
화면 밖의 숫자 - 프리마 앱과 2조 엔 시장
이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제한되고 재택근무가 확산되던 시기 집 안을 정리하려는 수요가 급증하며 중고 물품을 처분할 수 있는 프리마 앱(フリマアプリ) 이용이 함께 늘었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개인 간 전자상거래(CtoC-EC) 시장 규모는 2조 2,121억 엔으로, 전년 대비 12.9% 증가하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2조 엔을 넘어섰습니다. 단샤리가 더 이상 일부 애호가의 취향이 아니라 실제 소비 행태를 바꾼 흐름이라는 뜻입니다.
드라마가 그린 정리벽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わたしのウチには、なんにもない。)>(2016~2017, NHK BS 프리미엄)는 원작 만화가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 정식 출간됐을 만큼 이 장르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옴니버스 미스터리 <세상에 기묘한 이야기(世にも奇妙な物語)> 2016년 가을 특별판 <버리기에 미친 여자(捨て魔の女)>(2016, 후지TV, 국내 미출시)는 물건을 버릴 때마다 행운이 따른다는 미신적 설정으로 이 붐을 코미디에 접목했습니다.
스크립트 드라마는 아니지만 단샤리라는 말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야마시타 히데코 본인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우리 집, '단샤리' 했습니다(ウチ、断捨離しました!)>(BS아사히, 방영 중)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용어의 창시자가 15년 넘게 방송 전면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트렌드가 일시적 붐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비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채우는 것
결국 이 장르가 말하려는 건 '적게 갖는 삶'이 아닙니다.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정작 놓지 못했던 자신의 관계나 과거와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샤리 드라마는 미식 드라마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화려한 사건 대신 한 사람이 자신의 공간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돈해 가는 조용한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