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2일과 3일, 일본에서는 대학 육상부들이 도쿄와 하코네를 왕복하며 어깨띠를 잇는 하코네 역전(箱根駅伝)이 열립니다. 이 대회에는 이상한 팀이 하나 있습니다. 본선 진출을 놓친 여러 대학에서 선수를 뽑아 꾸린 간토 학생연합(関東学生連合)입니다. 이 팀은 오픈 참가라서 순위가 매겨지지 않습니다. 10위 안에 들어도 기록은 '참고기록'이 되고, 다음 해 시드권도 남기지 못합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순위표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팀입니다.
2026년 10월 10일 니혼TV(日本テレビ)에서 시작한 《우리들의 하코네 역전(俺たちの箱根駅伝)》은 바로 이 팀과, 그 레이스를 중계하는 방송국 사람들을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세웠습니다. 원작은 은행원 드라마 시리즈《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케이도 준(池井戸潤)의 소설입니다
일본 이야기는 늘 진 쪽에 마음을 줬다
일본의 이야기 전통에는 승자보다 패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고전『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는 권력 다툼에서 패해 몰락한 헤이케 가문의 이야기이고, 첫 문장부터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는 무상(無常)을 노래합니다. 헤이케 가문 몰락에 큰 공을 세웠지만 형에게 쫓겨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経)를 동정하는 마음에서 '호간비이키(判官贔屓)', 즉 약자와 패자를 편드는 마음이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여름 고시엔(甲子園)에서 진 고교 야구부가 경기장 흙을 담아 가는 장면이 매년 뉴스가 되는 것도 같은 감수성입니다.
이케이도 준의 작품도 이 흐름 위에 있습니다.《변두리 로켓(下町ロケット)》이 대기업 틈에서 버티는 작은 공장을 그렸듯 그의 주인공은 대개 힘이 약한 쪽에 서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간토 학생연합의 선수들은 단순히 '진 사람'이 아니라 이겨도 기록에 남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패자를 향한 일본 이야기의 시선이 가장 끝자리까지 내려간 셈입니다.
달리는 쪽과 비추는 쪽, 두 개의 '보이지 않는 사람'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패자가 경기장 안에만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원작은 선수들의 레이스와 함께 천 명 규모로 하코네 역전을 생중계하는 가상의 방송국 다이니치TV(大日テレビ)의 스태프를 그린 군상극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도 오이즈미 요(大泉洋)가 연기하는 중계 총괄 프로듀서 도쿠시게 료(徳重亮)입니다. 학생연합 감독 카이 마사토(甲斐真人) 역은 야마시타 토모히사(山下智久)가 맡았습니다.
이케이도는 하코네 역전 중계를 만들어 온 방송인들의 업적을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화면에 비치는 것은 선수지만 그 화면을 만드는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순위에 남지 않는 선수와 화면에 남지 않는 방송인, 이 드라마는 두 종류의 '보이지 않는 사람'을 나란히 세웠습니다. 부인공론(婦人公論)의 리뷰가 이 드라마를 두고 "패자를 향한 시선이 빛난다"고 쓴 것도 이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왜 하필 지금인가
첫째, 학생연합 자체가 최근 흔들렸습니다. 2024년 1월 열린 제100회 기념 대회에서는 학생연합이 편성되지 않았습니다. 프레지던트 온라인(PRESIDENT Online)은 2023년 8월, 이 중대한 결정이 학생도 없는 '밀실'에서 정해졌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학생연합은 이듬해 제101회 대회에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케이도의 소설이 주간 분슌(週刊文春) 연재를 마치고 단행본으로 나온 것이 바로 그 사이인 2024년 4월입니다. 한 해 자리를 잃었던 팀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둘째, 이 드라마를 만든 니혼TV는 실제로 하코네 역전을 생중계하는 방송사입니다. 대회 주최인 간토학생육상경기연맹(関東学生陸上競技連盟)의 전면 협력을 받았고, 가을부터 드라마가 방송되고 나면 해가 바뀐 1월 2일에 진짜 대회 중계가 이어집니다. 자기 회사의 대표 중계를 무대로 한 드라마를 그 중계 직전에 내보내는 것은 실제 중계를 맡은 방송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기획입니다.
셋째, 시청자의 반응입니다. 첫 회가 끝나자 해시태그가 X 트렌드 2위에 올랐고, "엄청난 드라마", "눈물 난다", "도쿠시게 씨, 이상적인 상사의 길을 달려 올라가는 중" 같은 글이 이어졌습니다. 한편 겐다이 비즈니스(現代ビジネス)는 '일요극장(日曜劇場) 방식'이 레이와(令和)에도 통할지 의문을 던지는 칼럼을 실었습니다.《한자와 나오키》이후 굳어진, 조직 안에서 정면 승부하는 이케이도식 드라마가 지금도 유효하냐는 질문입니다.
저는 그 답이 이번 작품의 주인공 선택에 있다고 봅니다. 숫자와 성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시대일수록 기록에 남지 않는 노력을 끝까지 지켜보는 이야기는 더 절실해집니다. 이번 드라마는 통쾌한 역전극의 쾌감은 그대로 두면서 그 무대를 순위표 바깥으로 옮겼습니다. 이케이도식 드라마가 레이와에 내놓은 답은 승리로 셈해지지 않는 레이스입니다.
순위표 밖의 이름을 기억하는 법
한국에서는 하코네 역전이 낯선 대회입니다. 하지만 1등만 기억하는 분위기에 지쳐 본 사람이라면 순위가 없는 팀이 끝까지 어깨띠를 잇는 장면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시즌의 학생연합팀은 "우리들의 첫 하코네 역전"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팀원 모두에게 본선은 처음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1월 니혼TV 중계 화면 한쪽에 학생연합 선수가 비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보게 될까요. 순위표에 없는 선수로 지나칠까요, 아니면 드라마 속 도쿠시게처럼 그 레이스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떠올릴까요. 이 드라마가 남기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기록할 만한 것'으로 여기고 사는가에 가깝습니다.